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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사회적 거리 두기’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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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0-04-06 09:38

[조현정] ‘사회적 거리 두기’를 생각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생각하다
조현정 (홍보협력팀장)


 세상은 재난 이전과 이후로 나뉘곤 한다. 세월호 이후에 그랬듯 코로나19 이후에도 사회는 변할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처방에 따라 많은 것이 취소되고, 연기되고, 달라졌다. 거리는 한산해졌고, 마음대로 ‘거리 두기’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쫓기듯이 그 길을 걷는다. 마치 재난영화의 도입부 같은 풍경이다.
 대학이라고 비켜 갈 수 있겠는가. 벚꽃잎 흩날리는 봄날, 학생들 웃음소리로 소란해야 할 캠퍼스는 적막하기 그지없다. 졸업식도 입학식도 취소되고 개강은 몇 주째 미루어졌다.
 강의가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되면서 학생들의 원성도 자자하다.
 “사이버대학이냐. 등록금 환불하라. 내가 이러려고 대학에 온줄 아냐.”
 그럴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과 정상참작의 사유야 많지만, 학생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대학들은 비난을 감수하며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 강의를 통해 대학의 존재 이유가 증명됐다고 하면 그나마 위안이 될까? 상상해보라. 학생들이 온라인 강의에 만족했다면? 앞으로 대학들이 큰돈 들여 시설을 확충하고 채용을 늘릴 이유가 무엇이며, 학생들이 사이버 대학을 두고 굳이 비싼 등록금 들여가며 대학에 다닐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어쩌면 대학은 더 큰 위기에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교육의 요체는 배움 자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의 배움에 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소통과 피드백이야말로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부디 이 힘을 빼앗아가지 않기를 바랄뿐.

 

 폐허 속에서 피는 꽃
 혼돈의 코로나19 시국에 돋보이는 한 사람, 정은경 재난대책본부장을 보면서 시구처럼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성실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자의 쌩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정유정의 소설 『28』속의 한 문장이 생각났다.
 “풍랑은 풍랑에 맡겨두고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거다.”

 

 그래서 다시 펼쳐 든 소설 『28』은 치명적인 빨간눈병이 휩쓸고 간 28일 동안의 이야기다.
 서울 근교 도시 화양에 치사율 100%에 가까운 빨간눈병이 창궐한다. 이 병이 개와 사람에게 동시에 발현하는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보도가 나가자, 사람들은 살기 위해 사랑하던 개를 거리에 버리고, 버림받은 개들은 살기 위해 맹수로 돌변해 사람을 공격한다. 정부는 거리의 개들을 살처분하고, 빨간눈병으로부터 서울을 지키기 위해 화양을 봉쇄한다. 바리케이드 안에서 많은 사람이 병에 걸려 죽거나 탈출을 시도하다 죽임당한다.
 살아 있어서 무섭고, 살고 싶어서 무서워지는 순간, 삶은 본성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죽이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리를 지킨다.
 시간이 흐르고, 살아남은 자들이 하나둘 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함께 외친다. “우리는 살아 있다. 우리는 살고 싶다. 우리를 살게 하라.”
 절대고독의 시간을 거쳐 그들은 깨달은 것이다. 삶이란 관계 속에서 의미가 있고, 인간은 연대할 때 힘을 발휘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그리고 참혹한 생존의 시간이야말로 인간성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사실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살겠다고 남 밟는 짓은 못하는 사람들, 그리하여 함께 살아남는 법을 모색하는 사람들.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그런 자들에 의해 유지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통계수치에 가려진 고통의 눈물
 2020년 4월 1일 현재 대한민국 확진 환자 9,887명, 사망자 165명.
 전세계 확진 환자 206개국 770,138명, 사망자 36,796명.
 숫자 속 누군가의 삶은 황망하게 끝나버렸고, 누군가는 세상이 쪼개지는 듯한 슬픔 속에 흐느껴 울고 있을 것이다.
 숫자에 포함되는 순간,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낱낱이 드러나는 세상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자기 자신조차 기억 못하는 시간의 퍼즐 조각은 손안의 스마트폰이, 지갑 속 신용카드가, 거리 곳곳의 CCTV가 맞춰준다. 보호되어야 할 사생활까지 만천하에 공유되고 하찮게 오르내린다. 정말이지, 바이러스도 바이러스지만 신상 공개 무서워서라도 바짝 긴장하게 되는 나날이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그들’의 행적쯤이야 낱낱이 밝혀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반성한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객관화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숫자 밖의 누구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기에, 그리하여 그들의 운명과 나의 운명이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거리 두기로 관계의 소중함을 돌아보기를
 ‘거리 두기’는 사회를 조용히, 그러나 무섭게 변화시키고 있다. 일상은 흐트러지고 낭만은 사라졌다. 우리 사회는 그토록 갈망해왔던 ‘저녁이 있는 삶’을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가고 있다.
 코로나가 물러나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갈 때를 상상해본다. 어쩌면 우리는 거리 두기에 너무나 잘 적응한 나머지, 좁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던 과거를 잊고서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기계 앞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에게 거리를 두며, 스스로를 섬처럼 고립시킨 채로. 코로나를 피하지 못해 죽는 사람보다 코로나를 피하느라 죽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쓸쓸한 생각도 든다. 세상은 재난을 계기로 변화한다. 그 변화가 약자를 보듬고, 관계의 소중함을 돌아보는 긍정적인 변화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람들을 고독하게 만들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치맥은 혼자 먹을 때보다 함께 먹을 때 더 맛있으니까 말이다.


-참고도서: 정유정, 『28』, 은행나무,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