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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진] 비민주적 개인과 민주적 공동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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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0-03-23 09:28

[임수진] 비민주적 개인과 민주적 공동체 사회

비민주적 개인과 민주적 공동체 사회

임수진(유아교육학과 교수)

 

".... 그들(기자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목격자의 증언이나 행인의 말이나 여론의 대변자가 될 만한 사람의 논평을 기사에 끼워 넣습니다. 그러한 진술들은 일단 인용이 되면 사실로 바뀝니다. 다시 말하면, 이러이러한 사람이 저러저러한 의견을 말했다는 게 하나의 사실이 된다는 것입니다.

 

 뉴스로 진실을 덮는 언론(인)
 위의 이야기는 기호학자이자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쓴 소설 『제0호』 속 대화다. 이 책은 타블로이드 신문창간을 준비하며 기자들이 논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목적을 위해 사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 잘라내고 오려 붙이는 방식으로 뉴스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최근 논란이 된 의학전문기자 H씨가 사실을 전달하는 방식을 보면 마치 이 소설 속의 한 장면 같다. 그는 3월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산 진단 키트의 효용성을 의심한다는 미국 의회측의 주장을 전달하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 지지파인 공화당의 마크 그린 의원이 FDA의 말을 빌려 “한국의 진단 키트는 사용에 적합하지 않다”며 한국의 대처를 평가절하 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H씨는 의학 전문기자로서 이와 같은 사실이 보도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며 국내 확진 검사의 정확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첫째, 취재 없이, “미국 의회에서 한국산 키트를 의심하고 있다.”는 마크 그린 의원의 일방적인 주장만 전했다. 둘째, 그가 말한 검사방법과 국내에서 시행하는 검사방법이 다르다는 사실(항체검사법과 유전자검출검사법) 자체는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셋째, 전문가로서의 자신의 권위를 사용했다. 그는 예방의학을 공부한 의학 전문기자였다. 가짜 뉴스는 오보나 왜곡된 뉴스와 다르다. 가짜 뉴스 이슈에서의 방점은 잘못된 내용에만 있지 않다. 특정 목적을 가지고 수용자의 의식을 조작하려는 목적하에 이루어진다는 점이 본질이다. 따라서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진짜인 것처럼 사람들이 속게 된다.

 

 가짜뉴스는 사적 욕망의 분출구
 물론 가짜뉴스는 과거에도 존재해왔다. “신문들은 뉴스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뉴스를 덮어서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라고 말한 소설 속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여론이 생성되는 방식은 과거와 다르다. 우리 모두가 뉴스를 생산할 수 있고, ‘좋아요’가 쌓이는 만큼 정치적 목적 외에 경제적 이익도 얻게 된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더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생산하는 일에 참여할 것이고, 이들의 주장이 주류 언론의 뉴스와 뒤섞이게 되어 과연 무엇이 사실인지 허구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다. 거짓이 진실을 가리고, ‘틀린 것’이 ‘차이’로 변주되는 잔인한 일상을 겪다 보니, 민주주의의 성립조건인 ‘자유’가 우리 삶에서 민주주의 실현을 방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가짜 뉴스에 현혹되는 이유는 그 뉴스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자신의 욕망과 경험을 투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 개인은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던 기존의 태도와 경험 혹은 신념에 따라 외부의 메시지 의미를 굴절시키기 마련이다. 따라서 고립된 개인의 인식은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주관적 관점과 편견에서 벗어나 인식을 확장하는 것은 오직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자아는 우리 내면에서부터 실현되는 게 아니라 자기 바깥에 있는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살아가며 형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과 악, 옳음과 그름과 같은 윤리적 기준이나 합의는 공동의 논의를 벗어나서는 도덕적인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

 

 진실은 공동체 사회에서만 숨 쉴 수 있어
 공동체라는 조건에서만 인간은 민주적일 수 있다. 공동체에 의해 창조된 의식이 믿을만한 것은, 반복되는 역사 안에서 실패를 반복하며, 실험에 실험을 거쳐 숙성된 논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면, 가짜뉴스‘들’과 선거를 앞두고 대두된 여러 정치적 프레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COVID-19)에 대한 한국사회의 대응은 정부의 능동적인 대처와 함께 시민사회의 공동체 의식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워싱턴포스트는 11일자 기사에서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책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시민들은 존엄성을 약속받고 진실을 신뢰할 수 있기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차이나게이트’와 같은 혐오와 편 가르기 전략에 맞서 상대편의 입장을 고려한 상호주의와 민주적 절차로 논의의 흐름을 바꾸고자 하는 일련의 행위에서 우리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코로나19(COVID-19)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측된다. 흔들리는 세계의 전망 앞에서,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 이면의 의미를 분석하고, 더 나아간 세계를 고민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학자)의 몫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가 경험한 공동체 의식은 개인의 자유와 우리가 지향하는 공동체에 대한 담론 축적을 통해 의식의 진보를 이루는 힘으로 작용할 것임을 믿는다.

 

- 참고도서:
① Umberto Eco(2015), Numero Zero, 이세욱(역, 2018) ,『제0호』, 열린책들
② Umberto Eco(1999), La bustina di Minerva, 김운찬(역, 2009),『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