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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화가 오윤이 염원하던 ‘실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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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0-03-02 14:38

[김경주] 화가 오윤이 염원하던 ‘실낙원’

화가 오윤이 염원하던 ‘실낙원’ 

김경주(공연전시기획학과)

 

 

 

 

 

 

 

 

 

 

 

 

 

 

 

 

 

 

 

 

 신자유주의에 쓸려간 농촌공동체
 나는 종종 그림도 읽는다. 하여 함께 읽어보고 싶은 것은 1980년대에 주로 활동했던 오윤의 채색 목판화 <춘무인 추무의>이다.
 <춘무인 추무의>를 일별해보면 전통연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농악의 ‘판 굿’ 장면으로 농촌공동체의 ‘집단적 신명’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먼저 오른쪽 하단 행렬의 선두에서 깃대 잡이가 들고 있는 영기의 붉은색 바탕에는 ‘춘무인 추무의’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곧 그것이 작품의 제목이 된다. 이는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의 어록에 있는 말이다. 그의 제자들은 그를 동학의 최제우 다음에 온 큰 스승으로 추앙한다.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추수할 것이 없다, 추수한 뒤에 곡식 종자를 가려두는 것은 오직 토지를 믿는 연고이니 이것이 곧 믿음의 길이라” 춘무인 추무의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농본사회에서 땅을 그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경구다. 하지만 그 땅은 한국사회의 산업화가 압축적으로 진행되어 도시로 편입되기 시작함에 따라 ‘공급 고정성’을 지닌 ‘부동산’이라는 이름의 재화로 바뀌고 이에 대한 소유 여부는 빈부 차별의 고질적 요인이 되어버렸다.

 

 열린 마당, 열린 공동체
 오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은 그 농촌공동체의 문화적 토대 위에서 살아온 농민들이거나 산업근대화 과정의 말단으로 막 편입되기 시작한 도시 빈민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 인물들은 특정 인물을 표상하고 있기보다 육체적 노동으로 삶을 유지해 온 ‘몸의 형상’들을 통해 그들의 사회적 계급을 드러내는 ‘무명인’들이다.
 깃발을 앞세우고 놀이행렬을 이끄는 일군의 농악대를 선두로 전형적인 ‘판 굿’ 마당을 펼치는 그 무명의 남녀노소는 저마다 흥에 겨워 한바탕 어깨춤을 추며 그 뒤를 따른다. 그 행렬은 서로 감았다 풀리기를 반복하며 안과 밖이 교차 된다. 지역에 따라 그 형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를 멍석말이, 고동 진, 방울 진, 달팽이 진 등으로 부르며 때로는 ‘자반 뒤집기’라는 판짜기를 통해 행렬의 안팎을 극적으로 반전시키기도 한다. 인물들은 서로 엇비슷한 행색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과 동작이 제각각 생동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마치 그 놀이판에 함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배제와 차별이 없는 모두의 공간에는 목발을 짚은 사람, 아비 어깨 위의 목마 탄 어린아이도 함께하고 있다.
 그 놀이판은 무대가 ‘마당’이다. 마당은 농촌사회에서 삶의 바탕이 되는 곳이며 혼례와 장례 등 삶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거의 모든 의례와 문화적 의미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곳이다. 따라서 그 공간형식이 서양의 프로시니엄 무대와는 다르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따로 없다는 점에서는 얼핏 서양의 부조리극 무대와 흡사하지만 서구의 전위극 무대는 그들 사회에 팽배한 소통부재와 잠재적 불안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그 핵심은 ‘열린 마당’이 아니라 ‘제거된 무대장치’에 있었다. 하지만 전통연희는 그 경계와 차별 없는 마당에서 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참여자 모두는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마당은 곧 경계와 차별을 없애며 삶의 시간에 일과 놀이의 균형을 제공한다.
 이 놀이마당이 생동감을 주고 있는 것은 공감각적 요소와 다시점(多視点) 방식의 화면구성에 있다. 인물들의 어깨춤과 행렬이 보여주는 시각적 요소와 함께 화면에 청각적 요소를 더하고 있는 것은 꽹과리를 든 상쇠와 부쇠, 그 뒤를 따르는 징, 장구, 북 등 이른바 사물(四物)이다. 사물은 기후를 주관하는 뇌공, 풍백, 운사, 우사라는 신격(神格)의 상징성을 가지며 꽹과리는 천둥, 징은 바람, 북은 구름, 장구는 비를 의미한다. 이를 또 음양으로 나누면 가죽으로 만든 북과 장구는 땅의 소리를 나타내고 쇠로 만든 징과 꽹과리는 하늘의 소리를 나타낸다. 이는 우리의 전통악기 구성이 농경사회의 세계인식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며 온 우주를 울리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놀이판을 바라보는 눈의 위치이다. 이는 서양의 투시도법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한 다시점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에서 행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시점은 부감시(俯瞰視)이지만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점은 같은 땅에서 발 딛고 바라보는 수평시(水平視)이다. 따라서 모든 인물은 원근(遠近)이 없이 평등하다. 하늘과 땅에서 바라보는 두 개의 시점이 하나로 겹쳐지는 곳에서 사람들이 춤추며 논다. 이러한 구성은 단원 김홍도의 씨름판, 혹은 삼현육각 등의 풍속화에서 발견되는 형식이다. 오윤은 전통회화의 시점구성 원리를 차용해 서로 다른 시점들을 하나로 융합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화면에서 이 모든 요소를 하나로 꿰어내고 있는 중심 주제는 바로 흥겨운 ‘춤’이다. 춤은 몸동작이지만 거기에는 공간적, 시간적, 시각적, 청각적 요소가 수반된다. 춤은 늘 가락과 박자를 보듬고 있으며 몸짓의 표현과 짝을 이루는 공감각적 요소로 작동한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콜링우드가 ‘춤은 모든 언어의 어머니’라고 했듯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인 춤은 몸짓을 통해 전달되는 행위 의미와, 그 시각적 요소, 공간적 너비, 그리고 시간적 흐름과 청각적 요소 등이 함께 한다. 미국의 무용 평론가 존 마틴은 춤의 ‘운동감각’을 우리 몸이 갖는 여섯 번째 감각, 즉 일종의 ‘내적 흉내’로 불렀다. 무의식적으로 흉내를 내는 것, 즉 타인의 경험과 감정을 몸으로 겪어보는 것이야말로 예술을 이해하고 이 세계에 동참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게 하는 ‘공감’이라는 끈이다.

 

 화가 오윤이 그린 사람과 삶
 나는 이 판화를 볼 때마다 선두의 깃대 잡이로부터 행렬의 맨 마지막 넘어질 듯 따라가는 여인까지 서른다섯 명의 인물들이 펼치는 저 신명의 마당에 문득 서른여섯 번째로 끼어들고 싶어진다. 그것은 오윤의 손끝이 새겨놓은 공감각적 울림 때문이겠지만 한국 사회를 짓누르던 정치사회적 통증에 전율하던 그가 40세의 짧은 나이에 세상을 마감하며 내뿜었을 그의 절절한 염원이 전해지기 때문이리라. 그가 이 판화에 새겨두고 싶었던 것은 농촌공동체의 아름다웠던 풍경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작금의 파편화된 사람살이와 우리들의 내면에 똬리를 튼 배타적 욕망에 대해 던지는 성찰의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참고도서: 오윤, 『동네사람 세상사람』, 학고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