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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반복되는 전염병과 혐오의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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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0-02-25 11:06

[김춘식] 반복되는 전염병과 혐오의 흑역사

반복되는 전염병과 혐오의 흑역사
김춘식(에너지시스템경영전공)

 

 흑사병의 참혹함과 심리적 출구
 1347년 시칠리아의 메시나 항에 도착한 상선의 선원들이 전염병에 걸린 상태로 배에서 내렸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사망했다. 후일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끔찍한 질병인 흑사병이 유럽에 최초로 상륙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전염병은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을 덮쳤으며, 불과 3년 후에는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반도, 그리고 러시아로까지도 확산되었다. 그 결과 유럽 인구 3분의 1에 해당되는 3000만 명 이상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매일 밤낮으로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 역병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다. 멀지 않아 온 땅이 묘지로 덮이리라. 나 또한 다섯의 아이들을 내 손으로 직접 묻었다. [...] 이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며 사람들은 세상에 종말이 왔다고 믿었다.”(Agnolo di Tura, 1348)


 죽은 시체에 검은 반점과 고름이 남기에 흑사병이라 불린 이 전염병은 유럽인들을 사회적 공황상태로 내몰았다. 사람들은 도시와 마을에서 도망쳤고, 시체를 매장하는 윤리보다 자신의 생존을 더 우선했다. 게다가 중세 유럽인들의 정신을 지배했던 교회도, 그리고 교황도 그들에게 어떠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불가항력적인 죽음을 매 순간순간에 맞이하는 유럽인들은 그들의 두려움을 대체할 심리적 출구로 ‘광기와 미신’을 찾았다. 흑사병의 원인을 몰랐던 중세 유럽인들은 이 전염병을 하느님이 인간에게 내린 천벌로 여기고 교회에 모여 더 열정적으로 기도와 금식에 매달렸다. 하지만 기도의 응답은 치유가 아닌 더 강한 ‘징벌’이었다. 금식으로 약해진 신체에 더해 막힌 공간인 교회에서 공동으로 드리는 미사나 기도는 전염을 더욱더 확산시켰기 때문이다.

 

 유럽사회의 공포와 인종주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희생제물을 바치지 않아서일까? 이제 광기로 변한 유럽인들의 공포는 적절한 희생제물을 찾기 시작했다. 흑사병의 창궐을 악마의 소행으로 여겼던 유럽인들에게 유대인들은 그들의 죄를 보속할 가장 적절한 희생양이었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구세주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으며, 황제숭배를 거부한 기독교인들을 황제에게 밀고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에 대한 깊은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학습된 증오는 이후 십자군 전쟁 때 성지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중부 유럽에서까지 서유럽 기독교인들이 자행한 대규모의 유대인 학살로 표출되었다. 더욱이 금융경제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던 유대인들이 최소한 10세기 이래 형성된 유럽의 초기 자본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한 유대인들에 대한 유럽사회의 질시 또한 매우 컸다. 결국 흑사병에 대한 공포와 유대인들에 대한 중세 기독교인들의 질시와 편견은 ‘마을의 샘물에 독약을 타거나 흑사병을 퍼뜨린 유대인‘으로 조작되었다. 그리고 이내 악마와 손을 잡은 유대인이라는 인종주의로 변질되어 대략 1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 공포로 무너진 대중심리가 실제 전염병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코로나 혐오주의와 국제사회의 연대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19>가 급격히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2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확진자도 7만 5천 명에 달한다. 또한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세계 27개국에서 450명 이상이 감염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아시아 전역에 지역감염이 시작되고 있으며, 이런 상황이라면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는 향후 최소한 수개월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세계 전역에서 발견되는 모든 인간 질병의 40% 이상은 전염병이며,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인간과 공존하며 공통된 환경을 공유하고 있는 데다가, 해외여행의 증가, 과학기술 발전의 영향, 기후변화로 등으로 인해 전염병의 예방과 통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이번 코로나 전염병은 더 이상 그것이 발생한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 전염병이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미국과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중국(인)을 문화적으로 불결하고 미개하며, 비도덕적인 사회‘로 간주하는 언론 보도가 잦다. 과거 제국주의 시기에 유럽의 ’백인‘들이 백인우월주의를 표방하고, 아시아(인)에 대한 공포를 부추겼던 황화론과 같은 “코로나 인종주의”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 내 우한이나 후베이성 출신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 한국과 일본에서의 중국인 전체에 대한 불신과 혐오 조장 등 ’내부 혐오‘가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종교인들이 공공연하게 “코로나19는 하나님이 내린 징벌이나 심판”이며, “현직 총리의 이름이 바이러스를 뜻하기에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등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펼치기까지 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연쇄 살인마인 중세 흑사병의 공포에 광기와 미신으로 폭력의 역사를 기록한 중세 유럽인들의 과오는 오늘을 이해하는 거울이다. 타자의 불행에 선한 연대로 동참해야 한다.
 

-참고도서 :
Susan Scott & Christopher Duncan(2004), Return of the Black Death, 황정연(역, 2005), 『흑사병의 귀환』, 황소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