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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근] 내 가족처럼 돌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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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0-02-17 13:55

[오세근]  내 가족처럼 돌볼 수는 없을까

내 가족처럼 돌볼 수는 없을까
오세근(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국가의 등장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문제가 사회에 적지 않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질병 확산을 막겠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사회복지관 등이 문을 닫음에 따라 맞벌이 가정을 포함해 복지서비스 제공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현대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은 단순히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국민의 행복을 촉진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른바 ‘사회복지’가 그것인데, 전통적으로 개인의 돌봄을 가족이 맡아왔던 것을 오늘날에는 국가가 나서서 돌봄 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복지시설들이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문을 닫게 되었으니, 갑자기 그 역할을 맡아야 하는 가족들로서는 일상생활에서 커다란 혼란을 겪을 수밖에는 없다. 요즘 신종 바이러스가 초래한 혼란과 불편함 때문에 새삼 타인에 대한 보살핌이 가족이든 사회든 공동체에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영유아, 아동,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을 보살피는 일이 더 이상 가족만의 일이 아닌 사회의 돌봄 서비스 제공으로 풀어야 한다는 동의를 얻은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1997년 경제공황(이른바 IMF 사태)’은 경제의 양적 성장 시기의 가족 돌봄 방식을 변경하게 한 중요한 변곡점이기도 하다. 1997년 공황은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노동자 해고를 편하게 함으로써 실업과 고용 불안정을 키운다. 생계 어려움을 덜기 위해 전업주부들이 맞벌이에 적극 나서기 시작한다. 소득과 자아실현을 위한 여성의 적극적 노동시장 참여는 무엇보다 생계 부양자로서 남성과 가정 내 돌봄 담당자로서 여성이라는 전형적 생활양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더욱이 이 시기 들어 이혼율이 증가하고 별거 및 한부모 가족이 늘어나며, 핵가족화를 지나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등 이전의 전형적인 가족 양식의 해체 또한 두드러진다. 이 때문에 그동안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던 영유아, 아동, 청소년, 장애인, 노인에 대한 돌봄(양육, 보살핌, 수발)은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상업주의에 물든 돌봄 서비스
 돌봄의 위기는 ‘가족 이외의 공적체계인 국가 혹은 민간 비영리 영역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돌봄의 사회화’를 위한 정책 구상과 제도 도입을 요구한다. 그래서 돌봄을 사회화하려는 다양한 제도가 마련된다. 예컨대, 영·유아에 대한 보육서비스, 중증 장애인에 대한 활동 보조서비스, 거동이 어려운 노인에 대한 장기요양서비스 등이 시행된다. 이와 같은 사회적 돌봄은 돌봄의 위기나 곤란을 국가가 나서서 해결한 점에서 사회적 연대의 실현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돌봄 서비스 제공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공공부문이 중심이 아니라 거의 민간의 손에 맡겨져 있다. 그 결과, 돌봄 서비스 부문이 시장화되고 상품화되고, 그에 따라 약자에 대한 돌봄조차 돈벌이의 수단이 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아동에 대한 부실한 식단이나 폭력, 장애인 시설에서 인권침해, 노인요양시설의 방임이나 학대 등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그래서 최근 이러한 폐단을 바로잡고 돌봄의 본래적 순수한 취지를 되살리기 위한 바람으로 '좋은 돌봄(good care)'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동양사상에서 ‘좋은 돌봄’의 가치를 찾다
 ‘좋은 돌봄’에 대한 이해는 시대나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좋은 돌봄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가족 같은 돌봄'이다. 이것은 사회적 돌봄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부모나 자식을 챙기는 것 같을 때 바람직한 돌봄으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가족 같은 돌봄이라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든다. 특히 방금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병원, 복지관, 유아원, 요양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기관들치고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은 곳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 순수함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나 다름없는 비현실적인 이상으로 들린다. 그만큼 우리는 이상을 버린 채 현실에 적응하는 데만 급급해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상을 염두에 두지 않은 현실추구는 맹목적인 삶이어서 결코 인간다운 삶이라고 볼 수 없다. 특히 인간이라면 약자인 타인과 더불어 살려는 의지와 실천에서 비로소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동양의 고전 『논어(論語)』와 『맹자(孟子)』에는 인간과 짐승이 다른 점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지금의 효는 물질적으로 잘 봉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나 말에게도 봉양함이 있으니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論語』, 「爲政」,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먹이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돼지로 기르는 것이요, 사랑하기만 하고 공경하지 않는 것은 짐승처럼 여기는 것이다. 공경하는 것은 폐백의 예물을 받기 전에 이미 마음에 있는 것이다(『孟子』, 「盡心章句上」, 孟子曰 食而弗愛 豕交之也 愛而不敬 獸畜之也 恭敬者 幣之未將者也).

 

  현대사회에서 인간관계가 계산적이고 각박해짐에 따라 언제부턴가 동양 고전의 지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돌봄의 근저에는 인간의 관계와 소통과 공감의 철학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 돌봄의 본질이 퇴색했다면 그만큼 그것의 철학적 바탕이 변질되거나 타락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많은 사람들이 동양의 지혜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돌봄의 본래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알다시피, 동양사상은 천지가 생명을 낳고 살리는 이치를 사람이 깨닫고 본받아 다른 존재와 선한 관계를 맺고 상대에 대한 사랑을 실행하는 것을 사유와 실행의 중심에 둔다. 그래서 돌봄 또한 그를 주고받는 사람 사이의 진정한 인격 결합이 없으면 성립하기 어려운 관계 행위로 이해한다. 진정한 인격 결합을 위해서는 스스로 생명이나 생활을 보존하고 지탱하기 어려운 사람의 상황을 역지사지하고 배려하는 어진 마음을 바탕에 놓아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동양사상은 사회적 돌봄이라고 해도 그 실행의 연원은 항상 자기 가족과 친족에 대한 보살핌에 두고 그로부터 확산한 것이어야 함을 지적한다. 가까운 가족과 친족을 진정으로 보살피는 마음이 있어야 이웃을 잘 돌볼 수 있고, 이웃을 잘 돌볼 수 있어야만 천지 만물 역시 아끼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남의 부모에게까지 미치게 하고, 내 자식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남의 아이에게까지 미치게 한다면 천하도 손바닥에 놓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孟子』, 「梁惠王章句上」, 老吾老 以及人之老 幼吾幼 以及人之幼 天下可運於掌). 

 

동양에서 말하는 이러한 돌봄의 철학이 돌봄에 관한 제도와 정책에서부터 돌봄을 실천하는 기관과 돌봄인에 이르기까지 스며들어야 한다. 이상적 가치가 경전 속의 언어로 박제되어서는 안 된다. 일터나 수입을 상실한 노동자, 소득이 낮은 저소득 가정, 희망을 잃은 청년 실업자, 빈곤 가정의 아동, 노후가 불안정한 노인, 삶의 의미를 확인하지 못하는 장애인, 차별받는 성적 소수자, 이주 노동자, 혼인 이주여성 등 의존적 사회 구성원에 대한 돌봄으로 확산되어 실행될 때 생명을 지닌 윤리적 힘으로 바뀔 것이다.


-참고도서: 맹자, 박경환 역,『孟子』, 홍익출판사, 2005